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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구선생님의 일기이다.
어릴적에 집에 책이 있어서 읽으려 시도해 보았는데,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되고 흥미를 못느껴 몇장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다.
백범선생이(이하 김구) 독립운동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속에서 유언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 나중에 자식들이 알게 하려 함 이었다.
책 첫장에 나오는 서두에서 자신은 53세, 아이들은 10세, 7세 라고 한다. (결혼을 늦게 한듯).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내용이 재미있고, 몰랐던 사실이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김구의 선조는 김자점으로 인조반정을 이끌었는데, 역적으로 몰려서 결국 양반집 자손이었으나, 신분을 숨기고 파주로 이사하여 농사 짓고 살게 된다.
당시 동학이 유행했고, 이들은 신분차별이 없고, 이씨조선 대신 계룡산 아래 신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김구는 충북보은에서 2대교주 최시형을 만나고, 동학에 입도 접주(소대장)일을 하였다. 동학이 탄압을 받으면서 피신하며 청계산 안진사를 만나게 된다. 안진사는 안중근의사의 아버지 안태훈 진사이고, 첫째가 안중근(우리가 알고있는 그 영웅 안중근의사)으로 사냥을 잘했다고 한다.
김구는 청나라로 구국활동을 위해 떠나던 중, 치하포 나루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일본에 보복으로 일본육군중위를 죽이고 떳떳히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라 써 붙이고 도망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와서 일본군이 잡으러 올때까지 3개월 가량을 기다린다. 이 내용은 영화로도 소개된적이 있다. ( 영화 "대장 김창수" )
인천감리서에 수감되고, 감옥안에서 죄수를 가르치고, 글을 모르는 죄수들을 위해 소장을 대필해 도움을 준다. 사형이 예정되었으나 고종임금이 극적으로 형집행을 정지시킨다. 당시 경성부안에 전화가 가설되었고 그외 지역에는 인천이 처음이었다고, 즉 인천에 전화가 가설된지 3일째 되는 1896.8.26 일이에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 고종의 전화로 형집행이 정지되었다. 2년후 탈옥하여 여러지방을 떠돌며, 감방친구, 지인, 독립 투사 등을 만나며 친분을 쌓게 된다.
김구는 주변에서 늦은 결혼을 종용하게 되는데, 이때 김구가 내세운 결혼조건이,
1. 재산을 따지지 않는다.
2. 여자도 학식이 있어야 한다. (외모 보다 지적인 여성을 선호했다 !! )
3. 직접 대면하여야 한다. (그 당시로는 파격적이라 함)
학교설립하여 인재양성을 하였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를 세웠고(부인과 아들 인이 같이 왔음), 부인은 둘째 신을 낳고 1년 후 별세하였음.
의봉창 의사는 마지막 사진을 웃으며 찍을 정도로 의개가 큰 분이셨다. (일부러 찾아와 의거를 계획하고 자신이 죽으러 가면서 찍은 마지막 사진이 책에 있는데 잇몸을 드러내며 해맑게 웃고 있다. 사진을 보니 더 가슴 아프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사용될 폭탄은 이봉창 의사 때의 실패를 거울 삼아 화력이 강하게 제조되었다.
중국에서 생활고에 따른 괴로움, 동료가족들을 챙기는 꼼꼼함이 묻어 있다. 그 와중에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독립단체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책에 김구의 눈을 통해 본 조선후기 개화기 시대상이 잘 묘사 되어 있다. 사람들의 병으로 죽고, 폭탄터져 죽고, 그 와중에 독립자금을 가지고 도망가고, 학식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교적 사상에 신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꺼리고 끝까지 옛 사상을 고집하는 일 등.책은 거의 위인전에 가깝다. 본인의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보면서 여러 사건을 긴박감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는 열혈 김구를 보게된다. 본인 스스로 튼튼한 체력을 가졌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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